Author: 김소월 (KIM Sowol)
김소월 (1902~1934)는 평안남도 구성에서 출생하여 오산학교(1915~1919)와 배재고등보통학교(1922~1923), 도교대학 상과(중퇴, 1923)에서 공부하고 1926년 동아일보 정주지국을 설립했다. 1920년 시 '낭인의 봄'으로 등단, 약 24년의 시인으로서의 삶을 산 후 1934년 사망했다. 198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. 대표 시들은 '먼후일 학생계(1920)', '죽으면 학생계(1920)', '허트러진 모래동으로 학생계(1920)', '금잔디 개벽(1922)', '엄마야 누나야 개벽(1922)', '닭은 꼬꾸요 개벽(1922)', '바람의 봄 개벽(1922)', '진달래 꽃 개벽(1922)', '예전엔 미처 몰랐어요(1923)', '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(1923)', '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(1923)', '산유화 영대(1924)', 고랑 영대(1924)', 생과 사 영대(1924)'가 있다.
[출처: 네이버 인물정보]
김소월은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병을 앓게 된 후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했다. 오산학교 중학부를 다니던 중 3.1운동 직후 학교가 폐쇄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했다. 그의 시인의 재질을 알아본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문단의 벗으로 나도향이 있다. 동아일보 지사 경영에 실패한 후 심한 염세증에 빠졌고 1930년대에 작품활동도 저주하여 생활고를 겪었다. 1934년 고향 곡산에 들어가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.
[출처: 한국민족문화대백과]
[출처: 네이버 인물정보]
김소월은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병을 앓게 된 후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했다. 오산학교 중학부를 다니던 중 3.1운동 직후 학교가 폐쇄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했다. 그의 시인의 재질을 알아본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문단의 벗으로 나도향이 있다. 동아일보 지사 경영에 실패한 후 심한 염세증에 빠졌고 1930년대에 작품활동도 저주하여 생활고를 겪었다. 1934년 고향 곡산에 들어가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.
[출처: 한국민족문화대백과]
김소월의 대표시이자 시집의 제목으로 선정된 <진달래꽃>을 적어본다.
나 보기가 역겨워 / 가실 때에는 /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.
영번에 약산 /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.
가시는 걸음 걸음 / 놓인 그 꽃을 /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.
나 보기가 역겨워 / 가실 때에는 /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.
아래 2개의 시는 시잡 앞부분에 실린 부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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